​오징어(이)가 태어났다!  SQUID came out of its EGG!

《soon, we will be strangers》

2021. 09. 01 - 09.12

참여작가: 현지윤

기획: 상히읗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안에서 시간이 작용하는 방식은 기이하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의 시간은 늘어지고, 행복하거나 또는 고비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공상에 잠길 때에는 시간이 멈춘 듯 하거나 심지어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우리는 시간을 마치 하나의 독립체인 것 처럼 개념화시키고 우리가 그것의 노예가 된 것처럼 현재를 살아간다. 현실에서는, 매일 그리고 매순간 시간을 조종하며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영사로써 활용한다. 시간은 선형적으로 움직이거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밀물과 썰물처럼 흘러가고 소멸되며, 기억을 통해 분명해진다. 이전의 상태는 현재로 올라가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은 “크리스탈 이미지” 기억 안에서 공존한다. 

 

고통의 가해와 회복 사이에 존재하는 광활한 시간 역시 선형적 또는 연대순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과거가 현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되려 동시에 타개된다. 그 기억들은 친밀감의 순간들에서 발생한 성심리적, 심리육체적인 고통의 회로 안에서 오래 머무르고 살아남는다. 회복이 반드시 기억상실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며, 흔히 말하는 “시간이 약 이다" 라는 말과는 달리 시간은 가차없고, 인내하며, 통솔적이고 또 잔인하다.

- 작가노트, 2021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현지윤은 영상, 컴퓨터 프로그래밍, 텍스타일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뉴미디어 아티스트이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 안에서 유영하는 고통과 기억, 상처의 존재에 주목하며, 이번 전시에서 27개의 패브릭으로 이루어진 <Dreadful Things Done by Dreadful Girls>(2021)을 선보인다. 모시 천 위에 이미지와 글씨를 수 놓은 작품은 애도, 폭력, 착취로부터 해방될 수 없는 소녀시절(girlhood)에 대한 탐구의 결과이다. 모시 한 장, 한 장이 마치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일기나 편지인 것처럼 전시장을 가득 채우며, 선형적인 흐름이 아닌 파편화되고 분열된 어느 소녀의 기억을 시각화한다. 전시장의 작은 방에 위치한 <I Prayed to Set My Hands on Fire>(2021)는 관람객이 직접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 작품이다. 플레이어는 열쇠, 문, 그리고 침대를 클릭하여 얼굴 없는 한 소녀를 방으로 이끈다. 이 게임의 서사는 정해져있지만, 플레이어는 “클릭”이라는 선택/행동을 통해 일종의 주체의식을 느낀다. 하지만, 이는 자유의지라는 허상일 뿐이다. 게임 속 소녀가 이 서사의 굴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플레이어도 마찬가지이다. 

 

과거가 현재보다 먼저 존재함은 분명하지만, 현재란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공존하며 생성되는 것이라는 베르그송의 말처럼, 이미 지나간 일임에도 끊임없이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과거와 그 기억들이 현지윤의 주요 모티프이다. 작가노트에 언급된 “크리스탈 이미지”는 베르그송과 들뢰즈의 시간 개념에 기인한다. 시간은 두 개의 서로 다른 투사를 통해 분열되는데, 하나는 모든 현재를 지나가게 하고, 또 다른 하나는 모든 과거를 보존한다. 이렇듯 시간은 두 가지 방향의 분열로 이루어진 것이며, 바로 이러한 분열이 우리가 크리스탈(결정화된) 이미지에서 목격하게 되는 시간인 것이다. 현지윤의 작품은 기억과 고통이란 선형적 시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치유되거나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분열된 시간 안에서 헤어졌다가 만났다가를 반복하며 결국 낯설어지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작가소개

현지윤(b. 1998)은 현재 미국을 기반으로 거주 및 활동중이다. 2021년 순수미술을 전공으로 워싱턴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아트 세인트 루이스 《Varsity XXIV》(2020), 더 퍼니쉬 베이비 《Yard Sale》(2020), The Chapel – Sanctuary for the Arts 《From the Year Above》(2021) 등 이 있다. 2021년에는 파라펫 리얼 휴먼즈(Parapet Real Humans)에서 벳시 엘리슨(Betsy Ellison)과 2인전을 개최하였다. John T. Milliken Award in Foreign Travel(2021), Morris Horowitz Award in New Media and Photography (2021), Mary Ottoson Travel Award(2021), Anderson Ranch Arts Center 레지던시(2020) 등 다수의 수상경력과 레지던시에 참여한 바 있다.